옛날 신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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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을 읽었다(1950~2002) - 이승호


과거 신문기사를 통해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는 책. 심각한 내용은 아니고, 구어체로 가볍게 풀어써서 쉽게 넘어간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링크)를 이용해 몇몇 기사를 직접 보면서 볼 수 있다(뉴스라이브러리는 현재[2012.7.30] 동아, 경향, 매경, 한겨레 서비스 중).


1.

한글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다. 한글 표기법(문제꺼리→문젯거리, 말썽꺼리→말썽거리 등), 외래어 표기법(포스타, 메-로디, 뽀스톤, 컴비...) 변화를 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80년대 중후반부터는 지금과 유사하긴 한데, 또 모르지. 10년 뒤에는 제목에 앍, 떫, 뙇 같은게 들어갈 지도?


2.

조별 과제 레포트로 신문기사를 쓴 적이 있었는데, 같은 조였던 08학번 남자애가 가져온 걸 보고 뒤집어 진 적이 있다. 문장의 50%가 어말어미 없이 끝났다. "~~했다고." , "~~한 것" , "~~ㅇㅇㅇㅇ(명사)" 이런 식이었다. 가끔 쓰면 모르겠는데 이런 식으로 한 문단을 채웠다. 벙찐 얼굴로 보니까 "...왜요?" 물어보길래 "됐다. 그냥 내가 쓸게" 그랬지.


3.

과거 신문기자(아직까지 언론인으로 남아있다면 국장급 이상이실 분들?)들의 엘리트의식 같은 걸 지금 기사보다 더 짙게 느낄 수 있다. 아예 훈계조로(취재원 입을 빌리지도 않고) 마무리 한 기사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마무리 할 지 고심고심했던 기사실습시간이 생각났다. 취재원(전문가, 교수 등)의 입을 빌어 대안을 제시하는 방법은 그들 뒤에 숨는 것 같아서 싫었고, 그렇다고 내 의견으로 마무리하자니 기사가 아니라 논술이 되어 버리고...


2004년『고래』(천명관)가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았을 때, 심사위원이었던 은희경 작가가 이런 심사평을 했다.


"...한편으로 이 모든 이야기의 성찬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 역시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소설이란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소설에 대한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이 대목을 보면서 옛날 신문이 생각났다. 기사는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까지 가야 하는 걸까, "그랬다"에서 끊어야 하는 걸까. 스트레이트 기사, 피처 기사로 나눠서 전자는 '사실 전달' , 후자는 '사실 전단 + a'가 답이긴 한데...


4.

길다면 긴 세월이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것도 많다. 특히 '안고 가지 말아야 할 것'들은 대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이상의 결과로서 몇 가지 발견되는 점은 교사들의 청소년에 대한 발달심리 정신위생학적인 고려가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사회나 성인이 '안 된다' '하지 말라' 등의 긍규를 아동에게 씌우기만 한다면 그는 유화전술을 쓰거나 공격적으로 나간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주 퇴폐하여버릴 것이라는 등 교육상 극히 상식적인 문제를 새삼스럽게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1955년 2월 9일 한국일보 <교사가 본 학생도의(學生道義)는 이렇다>